Atheist Freethinkers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Q]를 보고 <감상>

01.
 이것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Q(이하 Q)] 리뷰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언제나 그래왔듯) 에반게리온에 대해서는 '비평'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슨 글을 쓴다한들 에반게리온에 대한 글은 그저 '감상'에 불과하다.(실제로 영화 평론가들의 글이나 블로거들의 글이나, 에반게리온에 관한 글들은 대개 자신이 에반게리온을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어쩌고저쩌고 하는 사적인 얘기들을 포함하고 있기 마련이다. 대체 그런 걸 누가 궁금해 한단 말인가? 그러나, 결국 그런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해석이란 기본적으로 확고한 이해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 것인데, 에바는 언제나 이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의 코나 다리만 더듬거리며 코끼리의 심리학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에반게리온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에반게리온의 의미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나는 지금 Q만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는 TV 시리즈나 구극장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인류보완계획은 뭔가? 제레는 뭐하자는 곳인가? 당신은 지금 설정집이나 해석집을 보지 않고도 이에 대해 수월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오죽하면 에바를 더 쉽게 이해하자는 취지의 영상까지 나왔겠는가. 아, 개인적으론 엄디저트의 글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대체 뭔가? 뭐 어쩌자는 것인가?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의 말처럼, 우리는 에반게리온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오래도록 이 작품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다. 아마 신극장판의 마지막 작품이 될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이 나올 때까지, 그 이후에도 분명, 계속 그런 식이리라. 이 글은 그렇기에, Q에 대한 나만의 동인지이다. 항상 그랬지만 이번에는 유독 신지에게 공감하며 봤기에 주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02.
 많은 사람들이 Q의 뜬금없는 전개에 당황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TV 시리즈의 마지막 두 에피소드를 떠올려보시라. 줄곧 뭔가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던 시리즈가 별안간 주인공의 내면에 침잠해 모든 갈등을 끝내버린다. 그 유명한 '축하해', '해탈 미소' 결말이다. 이런 황당한 종막에 모두가 당황하고 분노했으며, 이것은 약 1년 반 후에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이하 EOE)]이 나올 때까지 지속되었다.(물론 EOE 이후에는 그 나름대로의 당황과 분노가 나타났지만) 사실 콘티 형식으로 흘러가는 24화 TV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EOE의 결말은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이는 25화와 26화에서 잠깐씩 비춰주는 외부세계 장면이 EOE의 특정장면들과 겹친다는 점을 통해서도 짐작이 가능한 일이다. 말하자면 이때부터 예고편 낚시는 있었다는 것이고, 나는 딱히 거기에 분노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겠다.
 문제는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Q의 전개가 전작인 [에반게리온: 파(이하 파)]에 비해 지나치게 상궤를 벗어났다는 점이다. 시공간적 배경부터가 크게 다른데, 늘 제3신동경시 근처에서만 벌어지던 싸움이 초반부터 우주에서 전개되는 파격적인 오프닝씬과 직후 밝혀지는 14년간의 공백이 모두 충격을 안겨준다. 관객은 당연히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정보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힘겹게 소화하는 와중에도 본작은 이해할 시간을 주기 위해 멈추는 대신 되레 더 나아간다. 이런저런 떡밥이 많지만,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점은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어째서인지 사람들의 불신, 혹은 더 나아가 공분의 대상이며, 이는 그가 저지른 모종의 죄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모종의 죄?'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는 파와 Q를 이을 단초를 찾게 된다. 이쯤에서 파의 결말부를 떠올려보자.
 아스카를 자신의 손으로 다치게 하고 절망에 빠진 신지는 구작의 전개를 따라 파일럿을 포기하고 돌아가려 한다. 그와 동시에 제10사도 제르엘이 네르프 본부까지 공격해 들어온다. 마리와 레이가 이에 맞서지만 제르엘의 압도적인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이에 레이가 목숨을 건 공격을 감행하나, 결국 구작에서처럼 이 공격은 실패하고 거꾸로 제르엘에게 흡수되고 만다. 대피소에 무기력하게 있던 신지는 마리의 손에 이끌려 바깥을 보는데, 이때 레이가 사도에 먹히는 처참한 장면을 보고는 다시 초호기에 탑승한다. 드디어 반격에 나서지만 전력 부족으로 제르엘에게 당하게 되고…….
 여기까지. 전반적으로 몇몇 부분을 빼면 구작의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파가 본격적으로 구작을 파괴하기 시작하는 건 바로 이때부터다.
 관객들이 안타까움에 가득 차 지켜보는 가운데, 별안간 신지의 두 눈이 붉게 빛나며 초호기가 '각성'한다. 이는 TV 시리즈 19화에서 보여준 '폭주'와는 명백히 다른 모습이다. 폭주가 신지의 의지와 무관한 초호기의 폭주라면, 이번에는 명백히 신지의 의지가 개입된 '각성'인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아야나미를 돌려줘!"라는 의지가 담겨있었고, 신지는 이를 통해 제르엘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킨다. 결국 2대 레이가 죽는 구작과 달리, 파에서는 신지가 "아야나미는 오직 아야나미 뿐"이라며 사도 속에서 그녀를 꺼내고, 레이는 그대로 초호기와 융합한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리는 "운 좋은 녀석이군"이라는 말을 한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레이를 구하는 과정에서 신지는 가프의 문을 열어버리는데, 이는 리츠코의 말을 빌리자면 "서드 임팩트의 시작"이다. 인류 멸망의 시작인 것이다.(구작에서도 그랬지만, 서드 임팩트는 곧 인류보완계획을 뜻한다)
 다행히도 스텝롤이 올라간 후 달에서 마크6를 타고 내려온 카오루가 카시우스의 창을 던져 막 시작되려던 서드 임팩트를 저지한다. 파 예고편에서는 이것을 니어 서드 임팩트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Q에서 언급하는 신지의 죄는 바로 이것(=니어 서드 임팩트)이라고 추정된다. 실제로 중반부에 가서 밝혀지듯이, 이때 신지가 벌인 일로 인해 인류의 멸망 프로그램이 발동해 대량 멸종 사태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사실 좀 당황스러운 일이다. 관객 대부분은 파에서 신지가 '각성'하는 모습을 보며 열광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가라 신지! 다른 사람들이 아닌 네가 원하는 대로!"라고 외치던 건 미사토라기보다는 오히려 구작과 다른 파격적인 전개를 원하던 관객들의 바람이기도 했으며, 이 점에서 그녀는 관객들의 대리자에 가까웠다. 파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 대부분은 "용자왕 신지!"를 외치며 달라진 전개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런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보면, 다음 작인 Q에서는 신지가 영웅처럼 귀환하는 것이 더욱 합당한 전개로 보인다. 물론 리츠코가 서드 임팩트가 어쩌고 하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일단 그 말에 담긴 불길한 함의는 카오루가 던진 창과 "이번에는 반드시 너만큼은 행복하게 만들어주겠어"라는 대사로 무마되었다고 봐도 좋았다. 어찌됐건 서드 임팩트는 저지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14년 후가 무대인 Q에서, 신지는 별안간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파에서 관객들을 대변하는 듯 보이던 미사토 역시 본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차가운 발언만을 남긴 채 신지를 마주보지 않는다. 이것은 신지를 응원하던 부류의 관객보다는, 신지를 찌질이라 욕하는 다른 부류의 관객들을 대신하는 발언에 가깝다. 한술 더 떠, 이전과 달리 파일럿으로서의 자아를 명확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신지에게 "에바만은 타지 말라"고까지 한다. 참고로 상기한 "에바만은 타지 말아주세요"는 스즈하라 토우지의 동생인 스즈하라 사쿠라의 대사인데, 재미있게도 그녀는 구작과 신극장판을 통틀어 처음으로 파일럿으로서의 신지를 긍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젠 정반대로, 사쿠라는 싱크로율이 0%라 에바에 타도 기동하지 못할 거라는 말에 잘 됐다며 기뻐하고, 신지가 에바에 타겠다고 말할 때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신지가 멋대로 떠날 때는 절대로 에바만은 타지 말라고 부탁한다. 나는 안노 히데아키가 구태여 사쿠라를 신지 옆에 붙여둔 것에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쿠라는 본래 "신지가 에바에 타야 우리가 안전할 수 있"기에 파일럿으로서의 신지를 긍정했다. 에바가 (사도의 공격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네르프의 에바는 모조리 섬멸해야 하고, 신지가 에바에 타면 우리를 지켜주기는커녕 끔찍한 파국이 일어난다. 이러한 사실이 암시된 채로 Q의 마지막에 가면 과연, 그 말대로 에바에 탄 신지는 죄를 갚는 대신 포스 임팩트를 일으키고 만다. 에바에 타야 한다, 타지 않으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라고 강요받던 이전과는 달리(신지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언제나 에바를 타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세계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그를 몰아붙이듯이), 이제는 오히려 에바에 절대로 타지 말아야 하는 꼴이 되었다. 신지를 둘러싼 세계가 무언가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신지는 당황한다. 이제껏 그가 딛고 있던 기반이 뿌리째 흔들렸다. 그 기반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장 역시 방향성을 상실했다. 신지의 카세트 플레이어는 정지했다. 신지가 앞으로 나갈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카세트 플레이어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건 신지가 카오루를 만난 이후이다. 더 정확히는, 진실을 알고 싶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이 벌인 엄청난 죄를 깨닫고 난 이후이다.
 진실을 알기위해 결심하는 과정에 이르는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중요한 장면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 레이와의 대화. 신지는 파의 마지막까지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온 레이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녀의 방(?)에 찾아간다. 레이에게 그동안 쌓아뒀던 의문점들을 토해내듯 물어보지만, 레이는 그저 "모른다"고 답한다. 이에 수긍하고 약간 체념한 신지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보기 위해 레이에게 책을 가져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방에도 책이 있었고, 영어로 된 책도 자주 읽었는데, 책을 좋아한 게 아니었느냐, 내가 네르프 도서관에서 찾아다주겠다고. 그러자 레이는 "좋아한다는 게 뭐냐"고 대꾸한다.
 이것은 신지가 네르프에 온 뒤 겪은 두 번째 소통 실패이다.(첫 번째는 일방적으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진 아버지와의 소통 실패) 그래도 신지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책을 가져다 두지만, 이후로는 레이와 소통하지 못하고, 대신 카오루라는 신비한 소년과 더 많은 교감을 나누게 된다.
 두 번째, 카오루와 미묘한 불협화음이지만 듣기엔 좋은 연탄을 치며 나누는 대화이다. 대략 다음과 같다.
 "더 잘 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지?"
 "잘 칠 필요는 없어. 좋은 소리를 내면 돼."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소리를 내지?"
 "반복하는 거야."
 이것은 신지가 Q에서 처음으로 겪는 평안한 시간이기도 하다. 피아노로 음을 교환하며 신지는 카오루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데, 재미있게도 카오루는 더 좋은 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반복'을 제시한다. 설령 닿지 않더라도 반복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연탄은 듣기 좋은 하모니를 이룰 것이다. 이것은 얼핏 구작에서 아스카와 신지가 서로 춤을 맞춰가는 과정을 통해 교감하게 되는 것과 비슷해 보이는 장면이다.(실제로 후반에 가면 두 사람은 13호기의 싱크로를 이때의 연주를 떠올리며 맞추게 된다. 마치 아스카와 신지가 그랬듯이) 아스카와 신지가 춤을 키워드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됐듯이, 카오루와 신지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소통하게 된다. 말하자면, 꾸준한 '반복'과 '연습'은 안노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제시하는 소통의 방식이기도 하다. 어쩌면 Q에서 신지가 계속해서 레이를 위해 책을 가져다놓던 것도 이것을 실천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완전한 소통 방식은 아니다. 어찌 보면 안노는 인간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는 것 같다. 카오루조차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생각하던 너의 행복이 네가 원하는 행복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결국 카오루가 신지와 완전한 소통을 나누진 못했음을 나타낸다. 카오루는 신지를 다독이고 어르며 모든 진실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인피니티가 되려다 실패한 존재들이야. 신경 쓸 필요 없어" 등의 대사를 통해 암시하듯, 모든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신지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며 죄를 대신 떠안을 뿐이다.(어째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극단적으로 말해 카오루는 그저 일방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신지에게 밀어붙인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반복'되는 소통 시도가 어느 정도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위한 일방적인 헌신, 우리는 이와 닮은 사랑을 알고 있다. 바로 모성애다. 구작에서도 그렇지만 신극장판에서도, 유이는 어린 신지(3세)에게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겠답시고 본인이 초호기에 흡수되는 장면을 보여준(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신지는 그때의 기억을 아예 지워버릴 정도로 강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유이의 의도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나는 이것이 그리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여기진 않는다. 게다가 결과적인 얘기이긴 해도, 유이의 사랑은 구극장판에서 신지에게 전달되는 반면에, Q에서는 카오루의 이러한 사랑이 신지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신지는 최후에 가서 반으로 나뉜 조작계 너머에서 허망하게 손을 내뻗으며 소통의 불가능성을 절감한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카오루가 남긴 "생각"과 그가 말하는 "인연이 너를 구원하리라"는 투의 말이다. 아마도 이것은 마지막 신극장판에서 확인되리라.
 세 번째, 신지와 카오루가 밤하늘을 보며 나누는 대화. 여기서 신지는 우주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한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 자신은 그저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급변한 세상과는 달리 우주는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카오루는 신지가 혼돈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 장면이 암시하는 바는 신지가 토우지의 이름이 새겨진 셔츠를 보고 카오루에게 카세트 플레이어 수리를 부탁할 때 드러난다. 신지는 지금 "두렵다".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마을은 어떻게 되었는지, 대체 이 14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탓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알고 싶지 않다. 설마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은 아니라 믿고 싶고, 이 거대한 세상이 나 하나 때문에 변할 리가 없다고 믿고 싶다. 고개를 끄덕인 뒤 안개로 덮인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신지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진실을 보고난 뒤에도 "아버지는 대체 뭘 한 거야"라면서 책임을 어른에게 전가하기도 한다. 도저히 한 소년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 신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부정하고 싶었을 뿐이다.
 카세트 플레이어는 다시 돌아간다.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그대로 멈출 수는 없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신지는 후유츠키에게서 들은 두 가지 진실─어머니와 초호기에 얽힌 비밀과 아야나미 레이에 대한 비밀─에 결정타를 맞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돌아와 카세트 플레이어를 내던진다. 구작에서부터 카세트 플레이어는 신지에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수단이었다. 때문에 이 장면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신지는 괴로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두 귀에 이어폰을 꽂는 것으로 도피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현실은 이미 신지를 집어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지는 이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다. 카세트 플레이어는 다시 멈췄다.
 이제 슬슬 극의 클라이맥스로 나아갈 시간이다. 디테일을 생략하자면, 신지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던진 후 카오루가 들어오고 신지는 다시 에바에 탈 결심을 한다. 두 사람은 사뭇 비장하게 에바 13호기에 탑승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미래를 향한 행보가 아닌 과거를 향한 행보였다. 그 점에서 이미 제목에서부터 두 사람이 내딛은 걸음의 끝이 비극적일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되는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본작의 부제는 You can (not) Redo이다. 저지른 죄는 (에바로) 되돌릴 수 있다는 카오루의 말은 이미 본작의 제목에서부터 괄호를 치고 부정되고 있다. 작품 속 후유츠키의 대사처럼, "세계를 부수는 것은 쉽지만, 재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두 사람은 겐도가 판 함정에 빠져 포스 임팩트를 일으키고 만다.

03.
 세카이계의 시작을 알린 에반게리온이지만, 사실 에바는 주로 히로인 소녀에게 세계의 운명을 감당케 하는 여타 세카이계와는 달리 소녀가 아닌 소년이 그 역할을 쥐고 있다.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카리 신지다. 더군다나 신지는 작중 벌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전투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그를 마냥 '무력한 주인공'으로만 취급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를 짊어지는 그 고통을 평범한 소년은 감당하기 힘들다. 아니, 감당하기 이전에, 대개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은 '세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힘들다. 사춘기란 이제 막 세계에 대한 거시적인 시야를 가지기 시작하는 나이다. 그 시기의 소년에게 세계를 맡긴다고 해봤자, 기껏해야 <핑퐁>의 두 소년처럼 세계를 멸망시키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세카이계의 묘미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나 맡을 법한 과업을 평범한 소년이 짊어진다는 그 갭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소년은 신화가 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세카이계 작품군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새로 쓰는 신화이다. "한 시대의 종교는 후대의 문학적 여흥거리다"라고 랠프 월도 에머슨는 말했다. 에반게리온이 기독교를 다루는 방식은 철저히 장르적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신이나 종교가 단순히 SF적 소재에 불과했듯이, 어쩌면 신이 죽은 시대에 기독교는 이미 가벼운 농담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에반게리온은 철저한 시대의 산물이다. 여기서 나는 기독교에 대해 말했지만, 실상 에반게리온은 일본의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내는 게 더욱 수월할 수 있다. 이를테면 에반게리온에 대해 논할 때 흔히 거론되곤 하는 세기말적 분위기는, 그 당시 일본에서 발생한 옴진리교 사태나 고베 대지진 등 뒤숭숭한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에반게리온은 당대 현실을 은유적으로 활용하는데 능숙한 작품이었고, 지금에 와서도 신극장판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여러 평자들이 동일본대지진이 Q에 미친 영향에 대해 논하는데, 실제로 전반적인 기조도 그렇고 작품 곳곳에서 대지진의 징후가 발견된다. 철저히 파괴된 세계의 이미지는 확실히 자연재해의 이미지를 닮았다. 재미있게도 에반게리온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또한 에반게리온을 반영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해 일본에서는 절전과 절약이 일상화 되었는데, 이 와중에 기업과 편의점 등지에서 불을 끄고 영업하는 등 시민들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행한 자발적인 절전을 "야시마 작전"이라고 칭한 일이 있었다. 아시겠지만 이는 <에반게리온: 서>에서 네르프가 사도를 처리하기 위해 펼친 작전명이다. 이처럼 현실과 픽션은 서로를 반영하며 닮아간다. 대지진 이후 오타쿠 문화, 서브컬쳐가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지진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부수도 정비' 계획에 에반게리온의 제3신동경시를 겹쳐보는 것도 결코 도약이 아니다. 3.11은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거나 극적으로 변화시켰고, 우연히도 대지진 전에 나온 작품 파 역시 기존의 에바를 철저히 파괴한 작품이기도 했다. 처참한 폐허는 뒤집어보면 새로운 기반이기도 하다. 제로에서 선을 그어 세계가 시작되듯이(TV 시리즈 26화), Q는 마침 적절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여기서 동일본대지진 이후 나온 진재문학과 각종 영상물들에 대해 논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기도 하거니와, 주제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作, 이하 <기적>)> 만큼은 지적해두고 싶다. 이 작품이 이 글에도 던져주는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적>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 코이치는 현재 어머니와 둘이서만 살고 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동생이 아버지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코이치는 종종 네 명이서 다시 같이 사는 꿈을 꾸는데, 그의 소원은 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화산이 폭발해 어머니와 둘이서 아버지가 사는 지역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이 소원에 대해 코이치의 동생 류노스케는 코이치가 원하는 기적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고, 코이치의 아버지는 코이치에게 때때로 '세계' 같은 큰일도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코이치는 그러나 세계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이제 곧 중학교에 올라갈 나이, 다소 빨리 찾아온 사춘기에 힘들어하며 코이치는 서서히 자신이 바라는 기적을 되돌아본다.
 (<기적>에 대해서는 [전영객잔]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참고하기로 하고) 다시 Q로 돌아가 보자. 변하지 않는 밤하늘을 보며 안심하는 신지. 성장하고 싶지 않은 소년이라는 테마. 소년은 우주를 본다. 자신은 책임이 없다. 그저 미약한 존재다. 거대한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주변인을 세심히 챙기기도 벅찬,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존재다. 그러나 그렇게 갇힌 작은 세계에서만 세상을 봤기에 세상은 파국을 맞이했다. 따지고 보면 신지가 원인이지만 신지에겐 책임을 묻기 힘들다. 신지는 단지 레이를 구하고 싶었을 따름이고, 서드 임팩트가 발생한 건 상정외의 결과였다. 사적인 감정에 휩쓸린 게 문제라면 그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초호기가 각성하면 가프의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정작 파일럿인 신지에게 알려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상황을 봐서는 이 사실을 아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 극소수는 신지에게 뭔가를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에반게리온은 뭔가를 뚜렷하게 명시적으로 전하는 캐릭터가 단 한 명도 없는 작품이었다. 카지를 생각해보자. 그는 8년만에 만난 연인인 미사토에게, 결국 변변찮은 고백 한 번 못하고 떠나가 버리지 않던가? 이것은 미사토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어버린다. 미사토의 절망은 그대로 아스카와 신지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고, 그 결과가 어떤 비극을 낳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이것이 소통의 불가능성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본작에서도 카오루가 "사람이 죽더라도 그 생각은 남는다"는 류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데, 이것은 TV 시리즈부터 에바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카지의 죽음 이후, 미사토는 결국 그 절망을 극복하고 카지의 의지를 잇게 된다. (십자가 팬던트로 상징되는) 이 의지는 이카리 신지에게로 이어지고, 그것은 결국 모든 파국이 지나간 후에 마지막까지도 남는다.
 이러한 주제와 함께 주된 정서를 이루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큰 비극을 낳는다"는 것이다. 현실은 비록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바위를 미는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게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주된 정서다.(이에 비추어보면 코믹스에서는 애니보다 더욱 알기 쉬운 전개가 이어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여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는 파에서도 Q에서도 각각 마리와 카오루의 대사를 통해 재차 확인되는 바다. 그런데 Q의 결말에서는 반대로, 뭔가 했더니 그건 그거대로 비극을 낳아버린 것이다! 얼핏 주제와 모순되는 전개로 보이나, 실은 앞서 언급했듯이 안노가 말하는 희망은 결코 과거에 있지 않다. 일단 찾아온 파국은 뒤돌릴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희망은 어디까지나 미래에, 그 기반은 어디까지나 비참한 현실 인식에서부터, 그 모색은 과거로부터 쌓아올린 인연으로. 시간이 중첩되며 에바는 나아간다. 에바는 언제나 희망을 말했다. Q에서도 예외는 없다. 언덕 저편으로 길게 이어진 세 사람의 발자국은 (예고편에서 노골적으로 말한 것처럼) 지금 희망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에 신지의 손에서 떨어진 카세트 플레이어를 과연 레이는 주워들었을까?
 세카이(계)의 종말. 나는 그 답을 기다릴 것이다.

=

아주 사적인 감상.
딱히 정리도 안 하고 죽 써내려갔다. 이후로도 다듬을 생각이 없다.
뭔가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핑백

  • 잠보니스틱스 : 오늘의 에바식 잡동사니 2013-05-05 23:09:45 #

    ... 각시수련님) 사실은 인류 포카포카 계획(일 리가) ★에바 Q : 역대 신극장판 중 최고. (cryingkid님) 서사의 방식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Q]를 보고 (쓺님) 세카이계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에바Q 곁 설정을 이해하고도 에바Q를 까는 이유 (유생리님) 템포 조절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에 ... more

덧글

  • 나인테일 2013/05/02 01:54 # 답글

    인류보완계획이나 제레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상관 없지요. 미노프스키 물리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도 건담을 평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레, 인류보완계획은 그냥 한 마디로 줄이면 "거대한 음모" 혹은 "숨은 흑막"인 것이지요. 후자를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 뭉치"라고 대치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 처럼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 몰라도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봅니다.

    에바도 칠드런 3인의 성장과 좌절, 그리고 그 이후라는 관점으로 줄거리를 짚어나가면 그렇게 꼬여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2013/05/02 02:23 #

    넹. 그렇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바를 혹평하거나 어려워 하는 많은 분들이 이 점을 지적하시니까요ㅋ
  • 잠본이 2013/05/02 23:26 # 답글

    작품 자체보다 이 평이 더 재미있다는 게 아이러니군요(...OTL)
  • 2013/05/03 02:19 #

    허허허…
    안노 이 망할 놈ㅠㅠ!
  • 2013/05/05 00: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05 15: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 2013/06/30 15:11 # 삭제 답글

    에반게리온은 비평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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